STUDIO 04
Studio 408
Cities of Serendipity 드로잉 머신을 통한 탈합리적 건축·도시설계 스튜디오
개요
스튜디오408은 드로잉 머신(Drawing Machine)이라는 장치에서 출발하여, 비결정적 생성 과정을 건축적 사유의 방법론으로 전환하는 설계 실험이다. 학생들은 예측 불가능한 드로잉을 산출하는 기계를 직접 설계·작동시키고, 그 결과물을 해석·번역하는 순환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세렌디피티의 도시(Cities of Serendipity)'라는 건축적·도시적 제안에 도달한다. 이를 통해 스튜디오는 합리주의적 패러다임 이후의 건축과 도시설계, 즉 탈합리적 미래(Post-Rational Futures of Architecture and Urbanism)를 탐구한다.
이론적 전제
여기서 드로잉 머신은 손을 대신해 그림을 그려주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Heinz von Foerster가 제시한 '비사소한 기계(Non-Trivial Machine)' 개념—동일한 입력에도 내부 상태에 따라 상이한 출력을 산출하는, 따라서 원리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기계—을 물리적·알고리즘적으로 구현한 장치로 정의된다.
이 정의는 스튜디오의 근본 태도를 규정한다. 중요한 것은 입력의 순간에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스스로 진화하며 산출하는 예측 불가능한 드로잉 자체를 설계의 자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로써 건축가는 처음부터 전지적 통제자가 아니라, 생성적 과정을 촉발하고 지켜보는 존재로 재정의된다.
이 이론적 전제는 오늘날 설계 실무를 재편하고 있는 생성형 AI와 직접적으로 공명한다. 동일한 프롬프트에도 매번 다른 결과를 산출하고 내부 상태에 따라 출력이 결정되는 생성형 AI는 사실상 비사소한 기계의 가장 강력한 동시대적 구현체이며, 프롬프트를 던지고 결과를 선별·해석·재투입하는 AI 기반 설계 워크플로우는 본 스튜디오의 생성–해석–피드백 순환과 구조적으로 동형이다. 따라서 규칙과 우연적 변수를 직접 설계한 기계를 다루는 경험은 블랙박스로서의 AI를 무비판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 시스템의 원리를 체득하는 훈련이 되며, 드로잉 머신은 AI와 함께 설계하는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설계 주체성—촉발하고, 관찰하고, 해석하고, 선별하는 능력—을 기르는 개념적 원형(prototype)으로 기능한다.
방법론
스튜디오의 작업은 다음의 순환 구조를 반복적으로 심화하며 전개된다.
(1) 기계의 설계와 작동 학생들은 각자 고유한 규칙, 피드백 루프, 우연적 변수를 지닌 드로잉 머신을 설계한다. 기계는 반복적으로 작동하며 내부 상태를 축적하고, 학생은 이 과정을 관찰한다. 이때 기계의 설계와 제작은 통상적인 건축 설계 도구를 벗어나, 엔지니어링 제작(engineering fabrication)과 공학적 계산을 가능하게 하는 툴들—피지컬 컴퓨팅, 알고리즘 코딩, 기구학적 메커니즘,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등—을 직접 다루어 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건축의 관습적 영역 바깥에 있는 공학적 사고와 제작 문화를 탐구하며, 설계자의 도구 자체를 스스로 만드는 경험을 한다.
(2) 지도화와 해석 기계가 산출한 결과물은 언뜻 무의미하고 추상적인 흔적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스튜디오는 바로 이 무의미성과 우연성을 건축적 사유의 재료로 전환하는 방법을 훈련한다. 학생들은 기계가 그린 선·밀도·리듬·중첩을 지도화(mapping)하고, 그 안에서 경계, 흐름, 밀도, 관계와 같은 공간적 잠재성을 발견하고 해석한다.
(3) 피드백과 심화 해석의 결과는 다시 새로운 규칙이 되어 드로잉 머신에 피드백되고, 기계는 또 다른 층위의 드로잉을 산출한다. 이 순환적 상호작용이 반복될수록 과정은 점차 심화된다.
(4) 건축적 번역 순환을 거치며 추상적 드로잉은 대지, 프로그램, 형태, 도시적 조직과 같은 구체적 건축 언어로 번역되고, 최종적으로 우연한 발견(serendipity)이 응축된 건축적·도시적 제안으로 귀결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결과를 사전에 완벽히 계획하는 설계자가 아니라, 비결정적 생성 과정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선별하며 구성하는 관찰자이자 해석자, 그리고 큐레이터로서 훈련받는다. 이는 단순한 역할극이 아니라, 통제 중심의 설계 관행 자체를 상대화하는 인식론적 전환의 훈련이다.
세렌디피티의 도시
스튜디오가 지향하는 최종 결과물은 기하학적으로 명징하게 통제된 도시가 아니다. 그것은 우연한 만남, 감응적 공간, 비결정적 흐름 속에서 성립하는 우연한 도시(Cities of Serendipity)'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단순한 형식적 실험과 해석을 넘어, 탈합리적 미래의 건축과 도시설계를 스스로의 손으로 탐구하고 제안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